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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46 25 11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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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북한의 침략

2차 세계대전말 미국과 소련은 위도 38도선을 따라 한반도를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었다.

1949년 미국과 소련의 군대는 철수되었으나 남과 북의 적개심은 깊어만 갔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경 북한이 전면적으로 남한을 침공하므로서 냉전이 시작됐다.  남한을 돕기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되었고, 영국을 포함한 각국의 군대가 연합하였다.  

유엔의 중재

처음엔 북한의 공습으로 쉽게 서울이 함락되었고, 남한과 미국 군대는 부산의 남항 교두보까지 밀렸다.  1950년 8월, 제1대대 미들섹스, 아글 그리고 서덜랜드 연대가 부산에 상륙, 전투에 투입되었다.  몇 주 후, 미군의 인천 수륙작전과 유엔의 부산 교두보  탈환으로 북한을 밀고 올라갔다.  제3대대 로열 오스트랄리안 연대, 제 27 영연방 연단으로 구성된 영국군이 북한군을 북쪽으로 추적해갔다.  평양을 함락했고, 1950년 11월에는 유엔군이 중국 국경선이 40마일 후방까지 진격해 있었다.  

중국의 간섭

이에 중국군이 대규모 반격을 했고, 청천강에 위치한 제27여단이 무너졌다.  추위와 험난한 지형속에서 유엔군은 접전하며 퇴각했다.    1951년 정월 중국군이 서울을 함락했다.  제 1대대(영국 제27, 29연단으로 구성), 노섭버랜드 푸실리어스, 글로스터지역 연대 그리고 로열 울스터 리플즈는 제8후사스 탱크부대, 제45 필드 연대 포병과 연합했다.   이개 여단은 한강에 저지선이 만들어 질때까지 후위를 맡았다.   1951년 3월 유엔의 반격으로 서울을 탄환했다.  겨울이 지나고, 유엔군은 38도선 부근에 참호를 파고 서울로 부터 완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몇마일 더 북쪽으로 진격했다.  4월 22일 중국군이 다시 반격을 했고, 갑평의 제27여단과 임진강의 제29여단이 이를 저지했으나 많은 사상자를 냈다.

정전

이것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1951년 7월 정전 협상이 개성에서 시작되었고 향후 2년여까지 소모전이 전개되었다.  영국군은 교대로 배치되어 고지를 사수하고 순찰을 했다.  양쪽다 군사 외교전략을 통해 타협의 우위를 차지하 려했다.  1951년 7월부터 영국군은 제1 영연방 사단을 형성하여 10월에는  중국군을 분열시키고, 38도선을 통제하며 외교적 압력을 강화하는 특수 임무에 참여했다.   가장 주요한 임무는 임진강 ('훅'으로 알려짐) 이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을 사수하는 것이였다.  1952년 11월, 블랙 와치(로열 하이랜드 연대)가 중국군의 공격을 그곳에서 저지했고, 1953년 5월에는 웰링턴 공작의 연대가 재 저지에 성공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이 합의되어 한국은 분단 민족으로 남게 되었다.

한국전쟁 동안(1950-1953), 영국군 1,109이 전사했고 2, 674명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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